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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여는 글

폴그레이엄닷컴을 자주 보며 완전히 매료되었다. 창 크기에 아무 반응 않는 콘텐츠 크기, 그래서 너무 작은 버튼, 20년 전 css 교재에 나올 듯한 디자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발자 중 한 명인 사람의 블로그가 그런 모습인 게 멋있다. 도메인도 그냥 paulgraham.com이다. 근데 블로그에 올라온 에세이를 읽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나도 그런 공간을 갖고 싶었다. 나만의 온라인 아지트, 디지털 안전가옥. 나는 브런치도 네이버 블로그도 갖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구절절 담을 만큼 애정이 가는 공간은 아니다. 디자인과 링크 주소에 플랫폼 냄새가 배어 있는 것도 싫다. 그래서 이명우닷컴을 만들자고 지난주쯤에 메모장 구석탱이에 적어 두었다. 처음엔 윅스 같은 툴로 내 블로그를 ..

Essays 2023.05.27

김지수

1 그가 일에 관해 써 내려간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헝클어진 책상과 서랍이 정리되고 반짝반짝 윤이 났다. 재능의 배신으로 멘탈이 널을 뛰는 시대에, 도리어 재능이 없어 재미를 붙이고 하나하나 일의 원리를 배워가는 미나가와의 모습은 경이롭다. 2 재능이 아니라 적성을 찾아가는 끈기 있는 과정, 잘하는 일이 아니라 잘 맞는 일을 몸에 익히며 조금씩 그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방식. 일종의 수련이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다. 글을 쓰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잘해서가 아니라 잘 하고 싶어서 계속하게 된다. 정체되거나 구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도, 하다 보면 완성이 되어 있고 운 좋게도 조금씩 늘기도 한다. 3 한 분야에 정성을 다하는 일본의 장인 문화와 미나가와 아키라가 특유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 ..

Quotes 2023.05.24

미나가와 아키라

“스포츠를 좋아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농구공을 튕겨 골대 밑까지 내달려 슛을 넣는 것. 그리고 달리기를 좋아했어요. 팔과 다리, 보폭 등 자세를 수정해가면서 궁리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달리는 것 자체도 즐거웠지만, 기록에 따라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 자극이 됐어요. 잠들기 전에는 항상 눈을 감고 달리기 시합을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어떻게 좋은 위치를 선점할지, 어느 타이밍에 스퍼트를 낼지… 기록이 월등하진 않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몰두했어요. 한계를 극복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그 느낌이 좋았어요.” “학창 시절 육상부 선생님에게 ‘사람의 성장은 일정하지 않고 개개의 성장을 긴 안목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의 경험 덕에 일도 사람도 장기적으로 바라볼 수..

Quotes 2023.05.24

앞으로의 교양

일본에서 편집자로 일을 시작해 컨설팅을 겸하고 있는 스가쓰케 마사노부가 기획한 대담집이다. 1년에 걸쳐 디자이너 하라 켄야, 건축가 이토 도요 등 11명을 시부야의 다이칸야마 츠타야로 초대했다. 그 대화를 책에 담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도 있다. 발행일은 2019년 1월 30일. 나는 당시 자대배치를 갓 받은 신병이었다. 선임들 이름을 외우고 있었을 거다. 요즘 이토 도요의 대담 부분을 읽는 중이다.

Bookshelf 2023.05.23

수풍석 뮤지엄

한라산 남서쪽 굽이진 숲길 속 디아넥스 호텔 주차장에 희고 깨끗한 관광버스 한 대가 서 있다. 제주에선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그 버스로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모인다. 이타미 준의 이름을 알음알음 짚어 찾아온 이들이다. 버스는 아주 정확한 시각에 출발하고, 버스 안에선 명랑한 목소리의 가이드가 준비된 멘트를 까랑까랑 내어 보인다. 수풍석 뮤지엄의 유지 및 보수, 관람객을 통제하는 모든 일은 뮤지엄이 자리한 비오토피아의 주민자치단체가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버스 운전수는 아주 느린 속도로 우리를 석 뮤지엄, 풍 뮤지엄, 슈 뮤지엄으로 데려다 놓는다. 과속방지턱에선 차를 거의 멈추다시피 하고,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조심해서 내리라고 일러 준다. 수풍석 뮤지엄은 건축가 이타미 준이 제주의 물, 바람, 그리..

Essays 2023.05.23

임승원

1 최근의 트렌드는 쇼츠(shorts)에서 생산되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요즘은 취향도 통제당하는 것 같다. 유튜브 쇼츠를 보면 늘 같은 것만 뜬다. 옆 사람이 보는 걸 나도 보고 있다. 나만의 차별점이 사라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으로 짜깁기된 쇼츠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지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본다. 2 적을 옮기는 것은 배를 갈아타는 것 같다. 쪽배라도 있어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뭔가 준비돼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을 잘 이해한다. 준비에 쓸 에너지를 다른 곳의 기준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에게 써보는 건 어떨까? 최근에 느낀 거지만 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사람이라기보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같다. 우리는 보통 기회를 찾아 떠난다. 기회..

Quotes 2023.05.23

유동룡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사람의 생명은들 무한하지 않다. 유한한 생명이기 때문에 더더욱 거기에서는 미의식이 생겨난다. 미의식의 근저에는 비애, 슬픔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새로운 미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Quotes 2023.05.23

스프린터

개봉일 2023.05.24. 감독 최승연 - 마라톤을 영화 소재로 삼는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장면을 연출할지 상상하기 쉽다. 42.195km니까. 반면 10초만에 경기가 끝나는 단거리 달리기는 어떤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할까? 그 대답을 이 영화보다 잘 해낸 작품은 찾기 힘들 거 같다. - 저예산 영화의 장점이라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감독이 영화를 온전히 통제해냈다는 짜릿함. 덕지덕지 붙은 게 없는 담백함. - 박성일 배우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 영화가 끝나고 gv를 들었다. 시나리오의 첫 구상은 루틴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매일 하는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옷을 입고 짐을 챙겨 버스를 타고 운동장에 가 달리고 밥먹고 달리고 집에 돌아오는 이야기. 프..

Videoclub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