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3

강릉의 소리와 단어

2024-03-01부터 2024-03-02까지 강문해변에서 마루 무너지는 소리와 포말 터지는 소리, 바람 소리를 들었다. 칠사당에서 기와지붕 위에 쌓여 있던 눈이 햇빛에 녹아, 기왓장을 타고 흙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묵었던 숙소의 툇마루에서 아침 새 지저귀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강릉에서 방문한 킨조 스튜디오에서 옥색 반팔 티셔츠와 무화과 사진 엽서를 샀다. 티셔츠에는 강릉의 일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다리가 다 나으면 이걸 입고 서울을 달릴 거다. 조카가 태어난지 100일이 되어 편지를 써주려던 참에 마침 무화과 엽서가 보여서 샀다. 조카 편지에 외삼촌 말고 외삼춘이라 쓰는 게 재밌다. 강릉도 강능이라 써봤다. 다른 뜻은 없고 강릉 영어 표기가 Gangneung인 게 재밌어서... ..

Essays 2024.03.12

블로그 여는 글

폴그레이엄닷컴을 자주 보며 완전히 매료되었다. 창 크기에 아무 반응 않는 콘텐츠 크기, 그래서 너무 작은 버튼, 20년 전 css 교재에 나올 듯한 디자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발자 중 한 명인 사람의 블로그가 그런 모습인 게 멋있다. 도메인도 그냥 paulgraham.com이다. 근데 블로그에 올라온 에세이를 읽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나도 그런 공간을 갖고 싶었다. 나만의 온라인 아지트, 디지털 안전가옥. 나는 브런치도 네이버 블로그도 갖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구절절 담을 만큼 애정이 가는 공간은 아니다. 디자인과 링크 주소에 플랫폼 냄새가 배어 있는 것도 싫다. 그래서 이명우닷컴을 만들자고 지난주쯤에 메모장 구석탱이에 적어 두었다. 처음엔 윅스 같은 툴로 내 블로그를 ..

Essays 2023.05.27

수풍석 뮤지엄

한라산 남서쪽 굽이진 숲길 속 디아넥스 호텔 주차장에 희고 깨끗한 관광버스 한 대가 서 있다. 제주에선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그 버스로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모인다. 이타미 준의 이름을 알음알음 짚어 찾아온 이들이다. 버스는 아주 정확한 시각에 출발하고, 버스 안에선 명랑한 목소리의 가이드가 준비된 멘트를 까랑까랑 내어 보인다. 수풍석 뮤지엄의 유지 및 보수, 관람객을 통제하는 모든 일은 뮤지엄이 자리한 비오토피아의 주민자치단체가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버스 운전수는 아주 느린 속도로 우리를 석 뮤지엄, 풍 뮤지엄, 슈 뮤지엄으로 데려다 놓는다. 과속방지턱에선 차를 거의 멈추다시피 하고,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조심해서 내리라고 일러 준다. 수풍석 뮤지엄은 건축가 이타미 준이 제주의 물, 바람, 그리..

Essays 202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