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s

기미 김경주

myeongwoolee 2024. 7. 10. 10:29

기미(幾黴)
―리안에게

 

김경주

 황혼에 대한 안목眼目은 내 눈의 무늬로 이야기하겠다 당신이 가진 사이와 당신을 가진 사이의 무늬라고 이야기하겠다

 죽은 나무 속에 사는 방房과 죽은 새 속에 사는 골목 사이에 바람의 인연이 있다 내가 당신을 만나 놓친 고요라고 하겠다 거리를 저녁의 냄새로 물들이는 바람과 사람을 시간의 기면으로 물들이는 서러움. 여기서 바람은 고아孤兒라는 말을 쓰겠다

 내가 버린 자전거들과 내가 잃어버린 자전거들 사이에 우리를 태운 내부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 귀가 없는 새들이 눈처럼 떨어지고 바다 속에 내리는 흰 눈들이 물빛을 버린다 그런 날 눈을 꾹 참고 사랑을 집에 데려간 적이 있다고 하겠다

 구름이 붉은 위胃를 산문山門에 걸쳐놓는다 어떤 쓸쓸한 자전 위에 누워 지구와의 인연을 생각한다고 하겠다 눈의 음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별의 무렵이라고 하겠다

 내리는 눈 속의 물소리가 어둡다 겨울의 눈目 안의 물결이 더 어두워지는 무렵이어서 오늘도 당신이 서서 잠든 고요는 제 깊은 불구로 돌아가고 싶겠다 돌의 비늘들과 돌 속의 그늘이 만나서 캄캄하게 젖는 사이라고 하겠다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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