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s

이마 허은실

myeongwoolee 2023. 11. 17. 00:06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빨간책방 300회 특집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소개한 빨책 작가 허은실 시인님의 시.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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