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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myeongwoolee 2024. 7. 8. 21:31

 

감독 빔 벤더스

주연 야쿠쇼 코지

 

2024년 7월 7일 씨네큐브에서 진행된 이동진 김중혁 퍼펙트 데이즈 GV 대담 내용을 받아적은 후 일부 수정.

* 영화 내용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동진

 훗날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 야쿠쇼 코지는 지난 2-30년간 일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얼굴 중 하나다.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배우를 믿지 못하면 저렇게 찍을 수 없다. 정면을 응시하는 롱테이크가 연출적으로 기발하진 않지만 배우가 그 대본을 온몸으로 받아낸 게 아닌가. 위대한 배우다.
 이 장면을 보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모닥불을 바라보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티모시가 모닥불을 바라보는 장면이 배우의 엄청난 연기력으로 성립된 것이라면, 야쿠쇼 코지의 이 장면은 연기에 테크닉이 더해진 경지다. 마지막 장면이 관객에게 인상적인 이유는, 이 영화를 보며 2시간 동안 관객이 야쿠쇼 코지의 눈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김중혁

 이 영화가 제작된 이야기는 이렇다. TTT 프로젝트*(The Tokyo Toilet)의 주최측이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빔 벤더스에게 4편의 단편을 만들어달라 요청했지만, 빔 벤더스는 장편을 고집한다. 장편 제작을 위해 빔 벤더스가 야쿠쇼 코지를 만났을 땐 이미 그가 출연한 작품을 10여편 보며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야쿠쇼 코지는 영화 제작 전 배역 소화를 위해 화장실 청소 일을 배웠는데, 화장실 청소를 너무 잘하게 되어서 일을 가르쳐 준 코치가 내일 출근할 수 있냐고 질문했다는 후문이 있다.

* 더 도쿄 토일렛: 시부야구에 성별, 연령, 장애와 관계없이 누구나 쾌적하게 이용 가능한 공중화장실 17개소를 설치한 프로젝트

 

이동진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얘기한다면 케이스 스터디겠지만 영화 자체가 히라야마라는 인물에 대한 전지적 소개가 아닌 우연한 관찰과 발견의 놀라움을 견지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빔 벤더스는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 글쓰기를 시작한 80년대에 엄청난 인물이었지만, 최근 그의 영화를 보며 감탄한 적은 없다. 조지 오웰이 "한 창작자가 온전한 정신으로 창작할 수 있는 기간은 15년"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빔 벤더스의 시대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 <피나> 같은 작품을 보며 빔 벤더스가 이젠 다른 장르(다큐멘터리)에서 빛을 발하나 싶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아, 빔 벤더스 아직 안 죽었네.'라고 생각했다.

 

김중혁

 이 영화로 외연을 확장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음악을 매개로 한 영화나, <안젤름 3D>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연장선처럼 말이다. "나 이런 것도 잘해."라고 말하는.


이동진

 빔 벤더스는 원래 일본을 좋아한다. 영화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로 오즈 야스지로를 꼽기도 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헌정 문구가 나오기도 한다.

 히라야마라는 이름을 한자로 쓰면 平山(평산, 평화로운 산)인데 이 이름은 오즈 야스지로 <꽁치의 맛> 주인공의 성이기도 하다. 이 두 히라야마는 공통점이 많다(참고로 <꽁치의 맛> 히라야마는 오즈 야스지로의 페르소나인 류 치슈). 두 영화 모두 초로의 신사가 혼자 남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이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디테일이 중요한 영화라는 점이 그렇다. '왜 빔 벤더스라는 독일 감독이 가장 일본적인 프로젝트,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를 영화에 녹였을까?'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히스토리가 있는 거다.


 

이동진

 김중혁 작가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흔히 어떤 예술가의 최고 작품은 돈과 무관하게 작업에 매진했을 때 나올 거라 생각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최고 작품은 모두 상업 의뢰로 시작한 작품들이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올림픽 전 도쿄 홍보의 일환으로 빔 벤더스에게 상업 프로젝트를 의뢰한 것인데, 이렇게 훌륭한 영화가 나온 것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도 하마구치 류스케와 친한 음악감독이 그에게 콘서트에 쓸 영상자료 좀 만들어달라는 부탁으로 시작되기도 했다.(작품의 제작동기와 예술성의 상관관계에 관한 질문)

 

김중혁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보여질지 제작 과정에선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등단 직후 주목받고 싶은 마음에 유명하고 오래된 문예지의 청탁에 더 매진했었다. 그런데 작품은 더 안 좋았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청탁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작가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작품을 망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히려 상업적인 의뢰를 받았을 때, 그 조건을 충족하는 동시에 자신의 예술성을 조금만 더하려고 할 때 작품이 좋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김중혁

 이 영화에 세 권의 책이 나온다.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에 수록된 「테라핀」, 고다 아야의 『나무』. 이 세 권의 책이 히라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야생 종려나무』의 줄거리는 유명하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도 나오는 대사인데, "Nothing과 Sadness 중 무엇을 고르겠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둘 다 죽어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바에(nothing), 남아서 슬퍼하는 것을(sadness) 선택"한다.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가 혼자 남아 슬퍼하고 쓸쓸해하는 것도 『야생 종려나무』의 주인공처럼 슬픔(sadness)을 선택한 대가가 아닐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테라핀」은 아주 끔찍한 이야기다.

 

이동진

 오에 겐자부로 『책 읽는 기쁨』(실제로 없는 책 제목이며, 『읽는 인간』으로 추정)이라는 책에 오에 겐자부로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좋아해서 길게 인용하더라.
 영화의 인물에 관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인물의 전사(前史, 영화에 나오지 않은 이전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 영화를 찍는 걸까, 전사를 모두 구축하지만 시나리오에선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걸까? 이 영화는 후자인 듯하다. 영화가 인물의 삶을 살펴보며 진실에 다가가는 태도를 갖춘 경우엔 그 인물의 전사가 영화에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히라야마의 전사를 추측해보자면, 먼저 여동생이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찾아온다. 아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을 거다. 듣는 음악으로 미루어보아 7-80년대에 문화를 향유한 상류 계층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꿈 장면은 모두 빔 벤더스의 아내인 사진작가 도나타 벤더스가 찍었다. 여러 이미지가 디졸브를 통해 오버랩되는 연출 기법을 사용했다. 히라야마가 꾸는 꿈은 적어도 그가 그 날 겪은 일이나, 과거사, 코모레비(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일컫는 일본어)로 구성된다. 여동생을 만난 날 꿈에는 물소리가 나온다. 아마 아버지에게 이전에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을 것 같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거다. 추측건대 히라야마는 자살을 시도한 것 같고, 자살 방법은 물과 관련되어 있을 듯하다(모두 평론가 개인의 추측임을 강조).

 이런 종류의 암시가 이 영화에 많다. 화장실에 갇힌 아이를 꺼내주고 부모 손에 딸려 보낼 때 카메라 앵글이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어른이 던진 병 조각에 상처 입은 아이가 그려진 표지판을 보여주는데, 그림 속 아이와 히라야마가 인사하는 아이의 복장이 노란 상의에 파란 바지로 일치한다. 아마 그 아이와 엄마는 히라야마의 상상이지 않을까. 아이가 학대당했을 때 언제든 찾아와 미안하다 해줄 부모와 그런 아이를 상상한 거다(평론가 개인의 추측임을 강조).


 

김중혁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며 <패터슨>을 떠올렸을 것이다. 둘은 유사한 듯 다르다. 패터슨은 5년, 10년 전에도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만 같지만, 히라야마는 지금은 평온해 보이나 과거에 전락을 맛봤을 것이다. 히라야마와 패터슨의 상태는 동일해 보이지만 마음의 풍경은 다를 것이다. 패터슨은 일상을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히라야마는 무언가에 억눌려 있고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울음이 터져나온 게 아닐까.

 

이동진

 두 영화가 모두 시적이어서 <패터슨>을 떠올리는 것일 텐데, <패터슨>은 (<퍼펙트 데이즈>와는 다르게) 자막으로 영화 속 시간이 구획화되어 있다. 내가 숫자 강박이 있어서 다 세어 보았는데 <퍼펙트 데이즈>에 나오는 날은 모두 12일이다. 날의 변화를 알려주는 자막이 없어 이 날들이 구분되진 않는다. 특이한 것은 잠자는 장면, 꿈꾸는 장면, 일어나는 장면이 매번 나오는데 이 사건들 사이의 문턱을 마모시켜(디졸브) 날짜의 구분이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제시되지만 예술적으로는 구분될 수 없다는 거다. 바로 이 점이 <패터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기도 한데 바로 '반복과 차이(한국 영화에선 홍상수, 철학에선 들뢰즈 같은)'다. '반복과 차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사한 것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되는 바로 그것은 절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는 면도, 세수, 캔커피를 꺼내 마신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연출적으로(앵글 등) 모두 다르게 표현되었다. 이 숏테이크의 연속이 굉장히 중요한 연출이다.

 

김중혁

 요즘 이동진 씨를 따라잡기 위해 한줄평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 영화의 한줄평은 이렇게 썼다. "퍼펙트 '데이'가 아니라 '데이즈'다." 어떤 하루가 완벽한 게 아니라, 이 날들이 함께 있어 퍼펙트해지는 거다. 구렁에 빠진 자가 하늘을 바라보듯 히라야마는 시선을, 영화는 카메라 앵글을 계속 하늘로 올린다.

 

이동진

 히라야마는 매일 아침 집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은 날엔 창문으로 하늘을 본다. 사실상 모든 날 하늘을 바라보는 거다.

 또 히라야마는 책을 살 때마다 말 거는 책방 주인의 말을 다 무시한다. 직장 동료 다카시와도 대화하지 않는다. 그가 다카시에게 직접 말한 대사는 단 하나인데, 다카시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통보했을 때 “그럼 나 혼자 일하라고?”라고 말한 것이다. 히라야마는 다카시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아마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했을 것 같다.

 다카시가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못난 놈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장애인 친구를 대하는 다카시의 태도를 보면 이 인물에게 감동하게 되는 면이 있다. 그게 히라야마도, 관객도 다카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인물을 열정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하는 거다. 총 열두 날 중 11일째 밤에 생판 모르는 남자 둘이서 그림자 밟기를 하고, 12일째 아침에 만감이 교차하는 그 클라이막스가 나오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이상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흐름이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무척 감동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태도에 있을 것이다.

 

김중혁

 고다 아야의 『나무』는 작가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무와 나눈 대화를 담은 에세이다. 이 중 일부를 발췌해 왔다. (중략) 나이테가 계속해서 자신의 안쪽을 감싸 안는 것. 이것이 히라야마가 가진 삶의 태도라고 본다. 히라야마가 특정한 인간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타인의 슬픔을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다.

 

이동진
 이 영화에서 히라야마에 균열을 내는 두 인물인 니코와 아야의 이름은 모두 다른 곳에서 왔다. 니코의 이름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왔을 것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데뷔 당시 그룹 이름이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였다. 이 영화에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가 나온다. 다카시의 애인인 아야의 이름은 고다 아야에서 왔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니코와 아야는 의미적으로 동일한 인물이다. 둘 다 카세트 테이프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처음 보며, 히라야마가 카세트 테이프 사용법을 알려줘야 하는 사람이다. 또 둘 다 히라야마에게서 무엇인가를 가져가는데 아야는 패티 스미스의 <Horses> 카세트 테이프를 가져가고, 니코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11』을 가져간다. 인물들을 심리적으로 중첩시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김중혁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것, 지금은 죽은 작가의 글을 읽는 것. 히라야마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들이다. 그 둘은 히라야마의 세계를 깨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히라야마에게 균열이 간 거 같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렇다. 균열이 갔다는 사실은 그 장면의 음악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할 땐 'House of Rising Sun'이, 영화가 끝날 땐 'Feeling Good'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노래는 빛과 관련 있다. 마지막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새로운 새벽, 새로운 아침, 새로운 오늘이 펼쳐진다. 나는 그것이 너무 좋아." 이 가사를 듣고 히라야마는 운다. 예전과는 달라진 것이 있기 때문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에. 안으로 갇히고 싶어 했던 히라야마를 니코와 아야가 깼기 때문에.

 

이동진
 이 영화를 보면 음악의 성공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그것이 그저 '좋은 옛 노래를 잘써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요즘 노래로도 이런 좋은 음악 사용은 잘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음악이 성공한 건 히라야마라는 사람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바로 그 노래들을 잘 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 출근 장면에서 히라야마가 'House of Rising Sun'을 직접 선곡해서 튼다. 나중에 술집 주인도 이 노래를 번안해서 부른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일출이라 불리는 집에서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아이가 집을 탈출하는 얘기다. 술집 주인이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도 대화에서 손님 한 명의 아내가 도망간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노래로 히라야마의 전사를 추측할 수 있는 거다.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를 구도자처럼 하는 도 닦는 사람이다. 이 인물이 사람에 대한 희망을 찾아나가게 된다. 계속 마주치던 홈리스와 나중에는 눈인사를 하고, 카메라로 하늘만 찍던 사람이 조카의 사진을 찍고, 모르는 이와 빙고를 하는 등... 딱 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타인과의 소통, 희망의 관계를 갖는다.

 

김중혁
 빔 벤더스는 킹크스의 <face to face>를 가장 많이 들었고, 그걸 영화에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빔 벤더스가 예전에는 돈이 없어 LP를 훔쳐 들었다는데 그때 들었던 것이 오티스 레딩, 루 리드, 니나 시몬, 킹크스라고 한다.


 

이동진

"히라야마의 '현재'를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관객들도 그랬을 텐데, 나도 이 영화를 보며 이 질문에 답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 히라야마의 현재를 과거에 대한 환멸 때문에 스스로를 처벌하는 시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인물의 전사를 어둡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배우가 연기하는 방식이나 연출 방식을 보면 이 남자는 이 삶을 자족하고 있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미소 짓는 표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게(사소한 것에 미소짓는 것) 이 사람을 현재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시지프스에 관한 알베르 카뮈의 유명한 에세이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시지프스를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에세이의 요지다. 카뮈는 삶이라는 것은 종교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무의미하지만, 그 무의미한 삶을 충만하게 살아낼 수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에세이의 결론은 "그러므로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한 사람이라 추론해야 한다."였던 것 같다. 그것이 시지프스 우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히라야마를 관성과 견딤으로 해석하고 싶겠지만 영화의 핵심은 그 반대다. 삶을 충분히 자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감동에 관한 이야기다. 히라야마는 충분히 행복하고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낸 사람이다.

 

김중혁
 나는 오늘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마지막 장면을 애써 기억해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잊을 법할 때 이 영화를 찾아 다시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드는 생각은 글로 쓰지 말고, 언어로 치환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까먹을 것 같을 때마다 이 장면을 다시 보며, 그 감동을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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