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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myeongwoolee 2024. 1. 3. 00:59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주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2023년 12월 21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동석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GV에 다녀왔다. 개봉했을 때 이미 보았던 영화다.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알았다. 좋은 영화구나. 줄거리와 구성이 희미하게나마 각인된 상태여서 영화를 더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고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크레딧이 올라오고 불빛이 켜지자 마자 적은 메모가 이렇게 남아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발짝 나아가는 것만이 개인이 진보하는 유일한 방법.'

 

GV 당시 이동진 평론가의 질문에 동시통역사가 읊었던 감독의 진술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GV에 참석하지 못 했던 분들,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보기를 바라며 그 내용을 올려본다.

 


 

이동진: '드라이브 마이 카'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하마구치 류스케: 뛰어넘어야만 할 정도로 큰 영화가 되었다. 만들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했고 배우, 원작자, 스태프 덕에 기적적으로 작품이 탄생했다. 평생 이런 작품을 못 만들어볼 것 같다.

 

이동진: 그간 많은 영화제 상을 탔다. 그 많은 트로피는 어디에 두나?

하마구치 류스케: 상이 성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제작사에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이 아닌 감독상만 자택에 두었다.

 

이동진: 그럼 자택에서 가장 잘 보이는 상은 무엇인가?

하마구치 류스케: 이유는 딱히 없지만 칸 영화제 에큐메니컬 상이다.

 

이동진: 드라이브 마이 카의 첫 장면은 반라의 두 남녀가 내러티브를 주고 받는 것을 관객에게 체험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인가?

하마구치 류스케: 원작(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을 읽으면 현실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문체 자체가 문학적이어서 그런데, 이런 원작의 분위기를 관객에게 주입하기 위한 연출이다.

 

이동진: 첫 장면에 나오는 '섹스와 내러티브' 설정은 셰에라자드라는 하루키의 다른 단편의 소스다.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여러 단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마구치 류스케: 2013년 잡지에서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처음 읽었는데, 내 감독으로서의 작가관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영화화를 막연하게 꿈꾸었다. 당시 실력은 많이 모자랐다.

 이후 프로듀서가 나에게 '하루키 작품의 영화화'를 제안했고, 드라이브 마이 카라면 가능할 거라고 답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어려워 여자 없는 남자들에 나오는 다른 단편에서도 영감을 얻기로 했다.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서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러 편의 단편소설이지만 공통 테마를 가진 작품들'이라고 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이 단편집을 읽으며 하나의 작품으로 여러 단편을 혼합할 길이 보였다. 기노, 셰에라자드를 드라이브 마이 카에 섞으면 완결성 측면에서 좋을 거라 생각했다.

 

이동진: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너무 많지만, 이런 흥미는 많은 부분 구성에서 기인한다. 오프닝 컷이 정확히 40분쯤 올라오는데, 그럼 첫 40분을 하나의 단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체적으로는) 한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장편이 기워져 있다는 거다. 이런 구조는 당신의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를 떠올리게 된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하마구치 류스케: 말씀하신 바와 같은 감각을 나도 느낀다. 단편과 장편의 조합. 어째서 그런 구조를 취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게 되고 말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플래시백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는 회상 씬이 많이 나오는데 이를 영화로 그대로 옮기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영화가 설명적이게 되고 인물은 얄팍해지니. 가후쿠라는 인물의 고민과 입체성을 위해 가상의 인물 오토를 등장시켜 첫 40분 동안 그런 작업을 했다.

 이야기가 한 번 종결되는 그 지점을 관객과 공유하기 위해 오프닝 크레딧을 40분에 삽입했다. 영화가 길어 집중력 유지에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이동진: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고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물의 동작이 제한되고 소수의 인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는 감독에게 제한을 주는 소품이다. 이 영화에선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동차'라는 공간을 특히 이 영화에서 당신이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 지점, 자동차로 영화를 찍는 것, 자동차에 매혹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마구치 류스케: 탈 것에 인물을 태우는 것을 좋아한다. 또 각본에 대화를 많이 넣는 걸 좋아해서 단순한 대화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승화하기 위해 탈 것을 집어넣는 편이다. 회화와 탈 것이 합해지면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나뿐만 아니라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도 그렇고, '교통수단을 통한 이동'은 인생의 농밀한 시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식으로 차용된다.

 내가 교통수단 중 특히 자동차를 활용한 건 상업 영화감독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껏 전철을 등장시켜왔던 건 돈이 없어서였다. 반면 자동차를 영화에 넣으려면 돈과 기술과 인력이 압도적으로 많이 필요하다. 경로도 조사해야 하고, 지점마다 스태프도 배치해야 한다. 이런 장면을 찍으려면 큰 조직이 필요하다.

 자동차는 사적인 공간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전철이 아닌 자동차였기에 가능한 대화를 구사하는 영화다.

 

 

이동진: 자동차 안이어야만 가능한 대화 장면에서 그 촬영 구도가 이 영화를 놀라운 작품으로 만든다. 기생충은 자동차 공간을 계급적으로 구획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자동차 공간 구획은 진실과 관련 있다. 다카마츠가 자동차 뒤에서 오토 이야기를 할 때, 미사키는 운전석에 앉아 전면을 응시한 채 듣기만 한다. 다카마츠가 내리고 미사키는 그의 진실함을 호소한다. 서로 얼굴을 바라볼 수 없음에도 서로의 진실이 연결되는 것을 자동차를 활용해 찍은 것이 놀랍다.

 또, 이 영화에서 서로에게 진실된 고백을 말하는 장면에선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이런 관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지 않고 뒤통수를 바라보게 한 뒤 진실을 캐치하게 한 구조가 매우 독특하게 느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답할 수는 없다. 자동차라는 공간은 앞뒤든 좌우든 눈을 마주치기 어려운 곳이다. 내 개인적 경험이 가미되어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그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느껴지는 내밀함이 서로 평소 할 수 없던 이야기를 하게 한다.

 심리적인 부분일 수 있는데, 누군가와 눈을 마주친다는 건 판단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단순히 서로를 마주보지 않음으로써 경계를 풀고 이야기하게 되기도 한다. 가후쿠와 미사키가 처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은유다. 둘에게 상대방과 서로를 마주본다는 건 가혹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서로 마주본다는 건 서로를 음미하거나 시험하는 계기가 된다. 친밀함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고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도 하다. 이런 인간관계는 길게 유지되기 어렵다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마주본다기보다 한 방향을 보는 관계가 부드럽고 길게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이야기의 방향성을 정해주었다는 감각이 있다.

 

이동진: 가후쿠와 달리 미사키의 이야기는 영화적으로 연출되지 않고 그녀의 입으로만 구전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 가후쿠의 차를 몰아주는 인물은 오토와 미사키 단 둘이다. 미사키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미사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유나의 집에서 식사한 직후 미사키는 본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듣는 것이 말하는 것의 동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미사키는 어떻게 가후쿠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나?

하마구치 류스케: 당신 해설을 들으니 내가 더 할 말이 없다. 미사키는 타카츠키와 가후쿠의 대화를 듣고 그의 진실을 호소하는데,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지만 미사키 본인이 진실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후쿠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가후쿠는 오토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가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미사키와 대화할 때 그렇다. 이 둘이 닮았기에 가후쿠는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거다. 둘이 대화를 트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고, 윤수 부부와의 식사는 우연한 타이밍이었을 뿐이다.

 

이동진: 연극의 구성상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이를 짐작해 다음 대사를 해야 한다. 수어도 마찬가지다. 관객은 그것을 해설과 자막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소통은 미끄러진다. 이 영화는 아내가 하려던 말을 듣기를 두려워했던 한 남자의 비극이다. 다양한 언어와 소통방식을 연출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마구치 류스케: 다언어 설정은 다른 기획에서 생각해 두었던 거다. 마침 가후쿠가 연극을 설계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이 기획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 활용했다. 연극이 가진 문제를 다언어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 정해진 것들에 능통한 상태에서 연극을 하는 관습에서 벗어나려면 '언어를 모른다'는 설정이 필요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깊게 생각해 본 건 아니지만, 가후쿠는 오토 이외의 인물에게는 솔직하다. 가후쿠는 오토, 즉 자기 자신과 관련한 주제는 회피한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언젠가 이 인물은 연기를 할 수 없을 거다. 가후쿠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그걸 해결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듣는 것이 ... (기억 안 남)

 

이동진: 하루키의 단편에서는 차종이 무엇인지까진 나오지 않는다. 사브 900이라는 차종은 이 영화에서만 특정되어 있다. 위쪽 창으로 가후쿠와 미사키가 함께 담배를 드는 장면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고, 촬영 과정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하마구치 류스케: 원작의 사브는 노란 오픈카다. 영화에서는 차종과 색을 다르게 했다.

 가후쿠와 미사키는 오토 이야기를 어느 정도 공유한 후 함께 차 안에서 담배를 핀다. 그 행위 자체가 상징하는 관계의 친밀함 때문에 이 장면은 꼭 찍고 싶었다. 다행히 촬영을 위해 대여한 차가 위쪽 창을 열 수 있는 차였다.

 연출에서 촬영 당시까지는 기획 자체가 불명확했다. 이 장면을 찍을 때 카메라 두 대를 썼다. B 카메라가 이 장면을 포착했는데, 촬영본을 본 순간 이 장면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미 쓰인 각본이 있었지만, 예외로 찍힌 이 장면이 이미 쓰인 각본에 대답하는 느낌을 받았다. 담배를 통해 둘의 얼굴이 아닌 침묵과 연결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동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나가 수어로 구사하는 대사는 영화 내내 반복해서 등장한다. 수어는 손과 얼굴을 사용하는 언어인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유나가 가후쿠의 등 뒤에서 수어를 구사하게 함으로써 가후쿠는 얼굴로 수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연출했나?

또, 그 장면을 미사키가 객석에서 보고 있다. 청자이자 증인으로서. 미사키를 왜 거기 앉혀 두었나?

마지막으로, 엔딩 장면의 촬영지가 한국이다. (왜 한국인지) 여러 차례 설명하셨겠지만 한 번만 더 설명해 달라.

하마구치 류스케: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앞선 대답의 연장선에서, 유나와 가후쿠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건 연극이기에 가능했다. 가후쿠 역 배우가 자신의 얼굴 앞에서 수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밤에 별이 반짝이는 것 같다.'고 했다. 미사키가 객석에서 지은 표정도 디렉팅 없이 (가후쿠와 유나의) 연기를 보며 그녀가 지은 그 표정 그대로다. 그건 관객에게 어떤 목적을 갖고 설계한 장면이 아니라, 이 영화가 가 닿아야 했던 도달점이었다.

 (엔딩에 관해서는) 가후쿠의 이야기는 그 연극 장면 이후를 더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미사키의 한국 장면은 당시 코로나로 인해 한국 촬영이 어려워 3개월 뒤에 촬영했다. 굳이 그 장면을 남긴 이유는 편집 때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미사키가 마지막에 짓는 표정이 그녀가 앞으로 살게 될 삶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반자인 개가 생긴 것도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 개는 유나의 개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들 하시는데 다른 개다.

 

이동진: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면 갈 곳이 많다. 수많은 홍보 일정을 소화하며 양질의 다작을 하는 게 대단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살면서 위기를 맞이했을 때 내러티브를 찾는다. 오토와 미사키가 그렇다. 당신에게는 이야기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나? 또, 여러 좋은 작품을 이 정도 속도로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따로 챙겨먹는 게 있다면 알려달라. 나도 사먹고 싶다.

하마구치 류스케: 이야기가 찾아오는 방법은 나도 죽을 만큼 알고 싶다. 아직은 그 패턴을 잘 모르겠다.

 무리하지 않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내 속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땐 그냥 그렇게 둔다. 삶을 살다보면 이야기가 찾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빨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런데 배급사가 제작 속도를 늦춰도 되지 않겠냐고는 하더라.

 끝으로 네 시간이나 써 준 관객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나중에 한국에서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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