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콤 베어리드
주연 캐서린 클린치
지난 일요일 영화 말없는 소녀 GV에 다녀왔습니다. 비 오는 날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2백여 명 남짓한 관객 분들과 둘러앉아 영화 보고, 평론가 이동진 씨, 소설가 김중혁 씨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저는 빨간책방을 너무 좋아해서 세 번 이상 돌려 들었고, 그래서 두 분의 대화가 흘러가는 리듬이나 농담의 배치가 익숙한 편인데요. 관객 분들도 '웃어라!' 하는 타이밍에 빵빵 터지시는 걸 보니 빨책 좀 들었다 하시는 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가 더 안락했습니다.
2022년 제작된 아일랜드 영화인데 독특한 점이 아일랜드라는 지역의 로컬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겁니다. 로컬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말은 감독이 영화가 갖는 배타성을 감수했다는 건데요. 촬영도 아일랜드, 배우도 아일랜드 사람, 언어도 아일랜드어를 썼습니다. 아일랜드는 인구 500만의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그중 아일랜드어를 쓰는 사람은 이제 10만여 명 남짓이라는군요. 이 영화는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세계에서 흥행했는데, 아일랜드어로 만든 영화로는 아주 큰 기록이라고 합니다.
저는 5점을 줬습니다. 친구와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일까?'를 주제로 얘기한 적 있는데 아마 슬픔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가진 어머니에 관한 감상, 약자를 바라보는 연민 등을 건드리지 않고 슬픔을 자아내려면 감독 자신이 슬픔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영화가 주는 슬픔은 제 짧은 영화 식견에선 무척 값진 슬픔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동진 김중혁 두 분께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GV 도중에 언급하셨는데 저는 그 영화에도 5점을 줬습니다. 어린아이의 연기를 너무 잘 디렉팅 했다는 점, 슬픔을 잘 다뤘다는 점이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 여기부터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간략한 줄거리
1981년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 코오트는 가정환경 탓으로 먼 친척 집에 맡겨지게 됩니다. 코오트는 그곳에서 몇 달 동안 이전과는 완전하게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오게 되는데요. 자신을 집에 다시 데려다 준 아일린과 숀에게 코오트가 달려가며 영화가 끝납니다.
등장인물
코오트의 가정은 8명입니다. 부모(댄, 메리)와 코오트를 포함한 네 자매, 어린 동생, 뱃속의 아이가 등장합니다. 코오트가 맡겨지는 가정엔 아일린과 숀이 있습니다.
원작소설
이 영화는 아일랜드 국민 작가 클레어 키건의 foster(맡겨진 소녀)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 타임스 선정 21세기 출간된 최고의 소설 50권 중 하나라고 하니 원작도 훌륭한 듯합니다. 이동진, 김중혁 씨가 '소설의 영화화'에 관해 GV 초반에 언급했는데요. 소설은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부가 소실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텍스트라는 매체가 갖는 함축성이 영상에 비해 압도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텍스트로 쓰인 소설은 그대로 영화로 옮기려면 너무나도 많은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러닝 타임은 그만큼 길어지기 어렵지요.
foster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만 그 길이가 중편소설이라 할만큼 길지 않습니다. 104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이 거의 그대로 영화로 재현될 수 있었을 거라고 하네요.
1981년
영화의 배경인 1981년은 아일랜드 역사에서 큰 점이 찍힌 해입니다. 1970-1980년대에 아일랜드는 영국과 쭉 대치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있습니다.
1981년 당시 영 연방 소속 북아일랜드의 교도소에 수감된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가 단식투쟁을 벌이다 하나 둘 아사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중간 아일린과 숀이 코오트를 장례식에 데려가기 전 '죽은 사람을 본 적 있냐'고 묻는데 코오트는 "티비에서만 봤어요."라고 답합니다. 코오트가 티비로 목격한 죽음은 아마 이 사건을 가리키는 걸 겁니다. 장례식장에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도 해당 뉴스가 라디오로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하네요.
Academy Ratio
이 영화의 화면 비율은 1.37:1입니다. 현대 영화는 대부분 와이드스크린으로 제작되는데 그에 비해 가로 폭이 좁습니다. 화면에 1명의 인물을 중앙에 잡는 촬영이 돋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비율 탓이 컸던 것 같습니다.
영어와 아일랜드어
영화엔 아일랜드어와 영어가 모두 등장하는데, 누가 영어를 쓰고 누가 아일랜드어를 쓰는지가 영화의 큰 단서 중 하나입니다. 코오트 자매는 아버지 댄과 대화할 땐 영어를, 어머니 메리와 대화할 땐 아일랜드어를 씁니다. 아마 아버지 댄이 영국 출신의 인물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댄은 가족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외도와 도박에 빠져 가정을 계속해서 분열하는 인물입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을 은유하는 연출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영화의 미감
영화가 시각적으로 아름답습니다. 아틀리에 에크리튜 김재원 대표님이,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서 영화 팬텀 스레드를 보고 편집샵 포인트오브뷰의 컬러를 베이지&블랙으로 잡았다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이 영화는 팬텀 스레드만큼 통제된 색감을 쓰진 않았지만 아일랜드의 자연과 적막함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옮긴 듯한 인상을 줍니다.
말없는 소녀
제목이 말없는 소녀인 만큼 영화에서 누가 말하고 누가 말하지 않는지, 누가 말이 많고 누가 말이 적은 지가 중요합니다. 중요하다는 건 감독이 캐릭터의 발화를 적극적으로 통제했다는 뜻입니다.
코오트는 가정과 학교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 이유는 말을 너무 못 하기 때문인데요. 가정과 사회가 코오트의 침묵을 아이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반면, 아일린과 숀은 '할 말은 하는 아이'라고 해 줍니다. 말없는 코오트가 아일린과 숀의 다정함 속에서 언어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입니다.
보여줌으로써 보여주지 않은 것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먼저 쓴다면, 영화는 그 이야기를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편집 예술일 겁니다. 다시 말하면 감독은 커다란 이야기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는 건데요. 이동진 씨는 이 영화가 보여줌으로써 보여주지 않은 것의 크기에 관해 짚었습니다. 단순하게는 코오트가 영화 이전에 살아왔을 인생, 메리가 댄으로부터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 댄의 외도처럼 영화 속 이야기의 접힌 반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 이후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결국 집으로 돌아온 코오트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아일린과 숀을 다시 찾아갈까? 아일린과 숀은 자신들의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수 있을까?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고 영화 이후 이야기를 골똘히 생각했던 적 있는데요. 그런 영화는 참 좋은 영화 같습니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씨의 말 중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스크린에서 한 번,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의 마음 속에서 한 번. 영화 말없는 소녀는 마지막 장면이 유독 역동적이어서, 두 번째로 시작되는 영화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김중혁 씨가 농담 삼아 제목이 말없는 소녀인 만큼 둘이서 오신 분도 집 가는 길에 말없이 영화를 음미해 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참지 못 했습니다. 그날 모인 다른 관객 분들은 어떠셨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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