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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했던 생각

myeongwoolee 2024. 1. 14. 16:32

 나는 나를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기본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어떤 추상과 관념을 머릿속에 갖고 있고, 주기적으로 그것을 교체한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패턴을 메타 인지하거나 겉으로 드러내는 걸 아직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나를 사유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2023년 한 해도 내가 했던 생각 중 결론지은 것과 여전히 풀지 못한 것이 있다. 그러면서 내게 중요해진 것도 있다. 그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생각했다.

 

9월에 방문한 요요기 공원

 

2023년 내가 결론지은 생각들

- 한 명의 인간 개체는 무척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타인에 대한 판단을 가능한 유보하기로 했다.

 내게 나쁜 짓을 했다고 나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다. 공중도덕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고 그이를 방탕하다 간주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항상 턱없이 부족한 만큼만 대화하고, 타인을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정보를 수집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타인을 단순화한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선한 사람, 난폭한 사람... 내가 아는 한 많은 사람은 나쁘면서 착하고, 선하면서 얄팍하고,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을 라벨링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내가 누군가를 라벨링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 그이를 알아야겠지만, 그 시간 동안 변화를 겪은 그이에게 내가 붙인 라벨은 낡고 닳아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고독하고, 내면에 있는 고독의 방은 자리가 아주 좁아서, 그 옆을 차고 들어 앉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굉장히 적다.

 나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과 관계 맺겠지만 나를 많이, 그러니까 정말 많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러니까 내 고독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의 수는 굉장히 적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으면 1명, 많아야 10명이 안 되지 않을까? 내 연인에게 못 보일 꼴 정말 많이 보여주며 하게 된 생각이다.

 

- 연애의 지속은 운명이 아닌 선택의 문제다.

 좀 더 어릴 땐 세상에는 나와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과의 연애는 길어봐야 설정된 유효기간을 넘을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안 맞는 사람과는 헤어지게 되어 있는데 노력으로 그 기간에 얼마만큼 다가설 것인가? 그래서 한 연애의 운명은 애초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헤어짐에 미련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맞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내 체면과 내숭을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상대방이 끔찍해 보일 것이고 질려버릴 수 있다. 그런데 어쩌면 나만큼 모순되고 영악하고 보잘것없는 상대방의 모습을 나는 얼마만큼 끌어안을 것인가? 이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 그것이 연애의 지속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로 포기하지 않는 한 잘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연애 관계는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의 풍경은 초반의 격렬한 전투에서 승패가 판가름되면 속속들이 성문을 열고 흘리는 피 없이 구색만 띄게 되는 중세시대 전쟁의 모습보다, 거의 고정된 난이도에서 무한히 지속되는 테트리스 게임에 가깝다. 몇 번의 실수로 벽돌은 게임이 끝날만큼 높이 쌓일 수 있지만 극적으로 해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이나 일 같은 외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난이도가 높아져서 곤란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테트리스 게임이 종료되지 않기 위해 끝나지 않는 노력을 전제해야 한다. 테트리스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는 정해져 있지 않고 각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 있다.

 

- 내가 배우고 있는 일은 일종의 전문 기술이고, 이 기술을 묵묵히 수련하는 긴 시간이 필요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2023년 내가 풀지 못한 생각들

- 나는 세상과 타인이 나를 오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행동하지만, 삶이라는 건 사실 나에 대한 끝없는 세상과 타인의 오해를 해명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 인간의 삶에서 고독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극복 가능한 것일까?

 고독할 수 없는 극복이라는 생각은 허연 시인의 「일요일」에 나오는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는 싯귀로 얻게 되었다. 우리는 극복할 수 없는 고독을 안고 살아야 하나 그 곁에 아주 적은 수의 사람을 둘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긴밀한 연대로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2023년 내게 중요해진 것들

- 시간

 요리와 설거지를 직접 하게 되면서, 수면 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평일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달리기, 요리, 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시간 관리가 중요해졌다. 이것뿐만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한 것 같다. 누가 나에게 시간을 써서 무언가를 해주었을 때 그것에 대한 감사를 신경 써서 표현한다.

 

- 진실을 좇는 것

 어떤 사건, 현상, 맥락은 인간 개체에 의해 독해되는 순간 편집된다. 사마귀가 파리를 잡아먹고 있다 가정해 보자. 이 자연 현상은 사람에게 관측되는 순간 관측자의 배경 지식, 생각, 시각, 가치관에 의해 해석된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게 된다. 이 사건을 전해 듣는 나는 사실로서의 사실이 아닌 해석된 사실을 듣게 된다. 우리는 대개 입수한 정보에 가치 판단의 이름표(좋음, 나쁨, A의 잘못임, 합리적이지 않은 사건임 등)를 붙여 뇌 속의 서랍장에 그것을 분류해 놓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니까 애초에 이 이름표라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거의 대부분은 이미 타인에 의해 해석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데 나는 왜곡된 판단을 가능한 적게 하는 사람이고 싶다.

 진실에 근접했을 때 판단은 왜곡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추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싶다.

 

- 건강

이 아까운 생을 더 즐겁게 살기 위해 계속 달리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내 건강을 애정으로 보살피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초가공식품과 설탕이 내 건강과 집중력을 해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 독서

 독서를 오락으로 삼고 싶어서 애썼다. 출퇴근길에 책을 읽기 위해 금방 가는 전철이 아니라 버스를 탄다던가, 장소나 상황마다 정해진 책을 읽는 등 독서를 내 몸에 붙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했다.

출퇴근길. 기분과 피로도에 따라 독서 능력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문학과 비문학을 함께 들고 다니기.

동전세탁소. 일주일에 한 번 가기 때문에 뜸하게 읽어도 되는 여행기 읽기.

주말. 비교적 자유롭게 책 읽을 수 있어 어려운 책도 시도해 보기.

만화. 만화책도 읽어보기.

 

- 조카

 처음으로 아주 어린 가족이 생겼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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