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2023.06.07.

myeongwoolee 2023. 6. 7. 22:53

요즘 일과 진로에 관해 아주 골똘히 생각한다.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게 된 계기는 무언가에 반하면서부터다. 너무 많은 것에 쉽게 반한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는데 그 일이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라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군에 가기 전엔 보건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고, 전역 후에는 그로스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런업이라는 유튜브를 보고 홀딱 반해 다짜고짜 메일을 보냈는데 덜컥 일하게 됐다. 거기서 3개월 일하면서 그 일이 그새 질려버렸다. 핑계를 대려면 얼마든 댈 수 있었다.

 

자꾸 흔들리는 내가 싫었다. 작년말 UX 라이터라는 직업에 반해 열심히 구직했고 지금 UX 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때쯤 모티비를 보고 모빌스 팀에서 일하고 싶어 기획자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그땐 기획자로 사는 내 삶을 상상했고 난 정말 그 일이 좋았다. 하지만 떨어졌고, 당시 지원한 다른 회사엔 붙었고, 당분간은 마음 잡고 일해보자는 생각으로 꽤 열심히 배웠다. 한두 달 전쯤부터는 이 일마저 질려버려 이젠 나도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모빌스에 붙었다면, 기획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그런 상상을 하면서. 아틀리에 에크리튜라는 회사를 보고 공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비미디어컴퍼니라는 회사를 보고 멋진 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프릳츠커피컴퍼니를 보고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풍석 뮤지엄을 보고 와선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옻칠장을 보고 칠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목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원의독백 유튜브를 보고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번주엔 미나 페르호넨의 옷을 보고 마음이 동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텍스타일 디자이너나 봉제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브랜드를 만들까도 생각했다. 모두 요 몇 달간의 일이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고 좋게 봐줄 수 있지만 매일 회사에 가야 하는 나로선 더 이상 이러고 싶지 않다.

 

난 더 좋은 회사에 가고 싶은 걸까, 아님 정말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걸까? 당장 회사를 관두고 낮에는 재봉틀을 돌리고 밤에는 야간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일을 배워야 하나? 주말에 봉제 수업이라도 들으며 간을 봐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없나. 자꾸 인생의 주도권을 쥐려고 애써봐야 헛수고라고, 흘러가는대로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난 그저 유명해지고 싶은 걸까, 풍족한 삶을 누리고 싶은 걸까, 내 일을 찾아 청춘을 갖다 바치고 싶은 걸까. 그런 고민들 속에서 회사에 가고 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달 정도 쉬던 수영장에 오늘 다시 갔다. 오랜만에 수영을 하면서 느낀 건 수영하는 동안만큼은 머리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는 거다. 그저 매 스트로크마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레인을 돌 때마다 더 좋은 자세를 잡기 위해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그러나 수영장 밖으로 나오면 얘기는 다르다. 나는 다시 고민의 굴레에 빠져든다. 그럼 나는 단순반복노동이 맞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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